옛날에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지 않으면 왔는지 없는지 알수도 없을정도로 말도 적고 행동도 굼떴다.
오죽 했으면 내 별명이 곰쥐였을까.
큰형부가 지어준 이름인데 방에 틀어박혀서 무얼 하는지 도무지 알수 가 없다고 나를 곰쥐라 불렀다.
친구도 없었다.
생일이 빨라서 (정월 열 나흗날) 7살때 입학통지서가 와서 학교를 보냈더니 일주일만에 엄마 젖 더 먹여서 보내라고 쫓겨난이가 나였다.
애기였을때는 종기가 덧나서 죽는다고 아이 죽으면 갖다 묻는 돌산에 지고갈 지게를 준비했었더니 안죽고 살았더란다.
간혹 집안 어른이 오시면 다른애들 싱싱하게 들로 산으로 뛰놀때 양지바른 쪽마루에서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졸고있던 아이가 너냐고 신기해 하기도 한다.
몇살적인지는 모르겠다.
오늘처럼 비가 오시는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땅바닥에 우물을 만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담장 돌틈에 뿌리를내린 파란 풀을 보며서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느끼며 그 시간을 행복해 했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 요즘같으면 당장에 병원에 데려가지 안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 지는것은 왜일까.
새벽안개, 쇠죽끓이던 가마솥, 그림 숙제가 나오면 두장을 그려서 하나를 주어야 했던 힘센 아이, 처음으로 그림공부를 시켜준 선생님, 몰래 딸기를 따먹다 들켜 혼났던 이웃어른,
아버지, 노랗게 익어 벌어진 무화과, 무엇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스크랩했던 종이들, 그 종이로 딱지를 만들었다고 팼던 어린동생, ...................
유년시절의 모든것들.
내 사는 이야기